•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자유 나의 Sissy 연대기(장문 주의) - 1

탁란탁
842 8 1

  그동안 이런 사이트의 존재를 몰랐다.

  가입 기념으로, 그리고 기록의 목적으로 나의 Sissy 연대기를 기억나는 대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써보려 한다.(반말, 긴글 주의)

 

  여기 누구나 그렇듯 처음부터 본인이 Sissy인지 몰랐을 것이다.

 

  나의 시작은 이러했다.

 

<초등 저학년>

1. 집에 아무도 없을때 전신거울 앞에 서서 옷을 다 벗고 고추랑 고환을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다리를 꼬아 여자분 처럼 만들어 보는게 좋았다. 발기도 안되는 어린나이이고 성에 아직 눈을 뜨지 않은 나이였는데 내 몸의 절반이 여자분처럼 된다는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2. 초등학교 문방구 앞에 있던 장남감이 나오던 100원짜리, 500원짜리 뽑기 기억 할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 나는 전신 거울 앞에서 알몸 차림으로 그 뽑기의 반쪽짜리 동그란 케이스를 고추에 밀착 시켜보았다. 500원 짜리 케이스의 넉넉함보다 내 작은 아래가 다 들어가지도 않는 100원짜리 케이스에 고추와 고환을 우겨넣으며 느끼는 압박감이 좋았다. 다 넣으면 고추와 고환의 굴곡이 없어진 플라스틱의 매끈한(그렇다고 여성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나의 아래가 멋져보였다.

 

<초등 고학년>

  당시 대학교를 다니던 사촌누나가 있었다. 그 집에 놀러갈 때 누나가 없는 틈을 타서 누나의 속옷님(그 중 팬티님을) 꺼내보는게 좋았다. 집에 있던 엄마의 후줄근하고 밋밋한 색깔의 속옷이 아닌 새내기 대학생 다운 수수하고 깨끗한 팬티가 좋았다. 자위가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발기는 가능했던 그때 누나의 팬티님에 발기한 자지를 문지르며 쿠퍼액을 조금 뭍혔던 기억도 있다. 여성의 팬티님에게 나는 그 때 처음 연민을 느꼈나보다. 아마도 여름이었다.

 

<중학교> - Sissy 관련 내용은 아님 주의

  중학교 시절 야겜 nanpa(동급생)이 급내에 유행이었다.(제 나이대가 공개되네요) 친구들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워서 대놓고 카피해달라고는 못했지만 친구의 억지스러운 권유에(고맙다 친구야) 못이기는척 받아놓고 집에서 혼자 했다. 처음에는 에디트 파일로 야스씬만 봤는데(왜인지 여성의 보지님은 표현이 안되어 있었음) 야스씬만 보는게 지겨웠던 어느날 스토리를 진행해 봤다. 캐릭터 중 굵은 웨이브의 보라색 긴 머리 양호선생님(현재는 보건선생님이라고 하죠?)과의 에피소드가 있다. 왜인지 양호실에 가게된 주인공이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양호선생님이 나의 그곳을 빤히 쳐다보다가 주인공인 내가 발기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주인공인 나는 하반신 탈의, 선생님은 미탈의. 그 때 양호선생님이 자지를 흔들어 주던가, 주인공인 나에게 시키던가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대사를 보면서 발기된 나의 자지도 같이 흔들다가 어느 순간 허리 아래 감각이 없어지면서 모니터에 (그 당시는 모니터 보안경 그런게 있었다) 하얀 정액을 힘차게 흩뿌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첫 자위 였다. 나는 자위를 컴퓨터 게임속 캐릭터에게 배웠다. 자위가 뭔지도 몰랐던 내게 신세계를 경험시켜준 양호 선생님 지금도 고맙습니다. 첫 자위의 경험이 이래서 인지 현재의 나는 CFNM이 아주 강하다.

 

<2010년대 초반>

  당시 키스방이 막 생겨날 때이다. 나는 종종 키스방에 들렀다. 삽입이 있는 성매매업소는 단속의 무서움과 성병의 두려움때문에 가고싶지 않았다. 당시 키스방 시스템(지금은 안다녀서 잘 몰라요)은 키스만 해주고 매니저 하의 터치 금지, 매니저가 고객 몸 터치 금지로 자플(혼자서 자위로 해결)만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키스를 하다가  나만 바지를 벗고 자위를 하는게 나는 너무 좋았다. 앞서 언급한 CFNM의 경험과 성향을 이곳에서 확실히 다졌다. 매니저에 따라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도 나의 흥분 포인트였다. 몇번의 방문 후 어느날 나는 왜인지 여성의 팬티님을 입은 나의 모습을 매니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할 했다. 당시 영업직이었던 나는 정장차림으로 대형마트에서 작운 리본이 달린 연핑크의 팬티님을 사서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여성의 팬티님은 종이봉투에 넣어서 주는줄 이때 처음 알았다. 

  자주 방문하던 매니저와 대화를 하다가 바지를 벗을 타이밍이 되었는데 내가 바지벗기를 주저하자(부끄러웠기 보다 손이 덜덜 떨릴정도로 너무 흥분이 되었다) 매니저가 왜 그러냐며 묻기에 내가 놀라지 말라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연핑크의 그것을 지퍼를 벌리며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무슨일인지 모르던 매니저는 지퍼 사이로 보이는 속옷의 색깔이 보통의 남성 속옷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여성분의 직감(여성분들은 매일 팬티님을 입으시니까)으로 '어? 이거 여자팬티 아니야?' 라며 깔깔 박장대소를 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았고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서야 바지를 주섬주섬 벗고 작은 사이즈의 연한 핑크색 팬티님의 앞부분을 1/4 가량 쿠퍼액으로 적신 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돌이켜 보면 이 날이 진짜 Sissy가 된 날 이었던것 같다.

 

<2010년대 초중반>

1. 당시에 소*넷이 사회적 이슈를 타고 없어지기 전의 일이다. 내 기억속의 소*넷은 소*'s 야설 가이드로 200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었다.(나이가 또 이렇게 공개되네요) 나는 만남을 위해 사이트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야설, 야사를 보러 사이트를 자주 들르곤 했었다. 펨돔 소설이 드물던 그때 나는 그곳에서 펨돔류 소설을 처음 접했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오줌좀먹자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당시 소*넷 카테고리에 CD, 스와핑, 초대 등 온갖종류의 카페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당시에 드물던 브라질리언 왁싱을 홍보하는 곳이 있었고 합의하에 자지를 장시간 노출할 수 있는 이 곳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방문했다. 여성 팬티님을 입고 방문했고, 왁싱의 고통에도 풀리지 않는 발기를 과시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비아그라를 복용했다. 팬티님은 시술전 벗어 바지 주머니에 살짝 걸쳐 놓았다. 혹시 보실 수 있다면 보실 수 있도록.(그러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술 업소는 양재에 있던 '핑크*왁싱' 원장은 짜리몽땅 40대 아줌마였다. 성적인 대화는 전혀 없었고 성적인 터치도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기억나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우선 어떻게 보고 오셨냐기에 소*넷 광고 올리신거 보고 왔다고 답하니까, 거긴 좀 이상한 곳 아니냐고 반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생각이면 그곳엔 왜 홍보를 했는지.

  1) 꽉끼는 여성 팬티님을 방문 몇시간 전부터 입고 있었기 떄문에 엉덩이 윗부분과 허벅지에 팬티님 라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남성의 속옷과는 면적이 달라서 속옷 라인이 생기는 위치가 다르다. 이걸 보신 관리사님이 '속옷을 좀 작은것으로 입으셨나봐요. 라인이 있네요 남자들은 여유있게 입어야 된대요.' 라길래 나는 '네' 라고 대답했지만 앞보지에서는 쿠퍼액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2) 뒷보지(그 당시에는 청년막 개통 전이고 뒷보지라는 용어도 알기 전입니다)를 왁싱하기 위해선 빠떼루 자세(고양이자세)를 취해야 한다. 보통의 남성은 항문을 보이기 부끄러워 그 자세를 취하기 꺼려한다고 했는데 나는 완벽한 여성분의 후배위 자세로 다리는 벌리고 허리는 아래로, 엉덩이는 하늘로 향하게 하여 뒷보지를 활짝 개방했더니 조금 놀라시고 칭찬해주셨다. '와 보통 남성분들은 이 자세가 안나오는데 완벽하셔요.' 이 말에 앞보지에서 또 다시 쿠퍼액이 주륵 흘렀던 기억

  3) 비아그라를 복용한데다 왕성한 나이였으므로 발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건강한 남성이라도 왁싱 중 발기하는 시간보다 말랑한 시간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역행하고 있었으니 관리사님이 '건강하시네요. 다른분들은 이정도까지는 아니시던데'라고 했던 기억

신고공유스크랩
mieeim님 포함 8명이 추천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공유

퍼머링크